[주일설교, 2023.03.05, 김진영 담임목사] 다윗 왕의 용사들 : 친구와 동역자들
1. 기본 정보
| 항목 | 내용 |
|---|---|
| 일자 | 2023년 3월 5일 (주일) |
| 설교자 | 김진영 담임목사 (서울중앙교회) |
| 설교 제목 | 다윗 왕의 용사들 : 친구와 동역자들 |
| 성경 본문 | 사무엘하 21장 15-22절, 23장 13-17절 |
| 함께 읽은 말씀 | 요한복음 14:12-14 / 요한복음 15:13-15 / 데살로니가전서 2:19-20 |
| 영상 | https://youtu.be/yEQeQzGL9NM (설교 약 35분 + 기도) |
작성 근거: 유튜브 영상의 한국어 자동 자막 전체를 읽고 정리했습니다. 자동 자막은 고유명사와 낱말을 자주 틀리게 받아 적으므로(예: "아비세·아비스"→아비새, "엘 하나니"→엘하난, "요셉 밧세벳·요셉 바세린"→요셉밧세벳, "목을 죽이십시오"→목을 축이십시오, "마틴 루트"→마르틴 루터) 성경 본문과 문맥에 맞추어 바로잡았습니다.
이 설교는 교회 설립 70주년을 감사하는 시기에 전해졌으며, 목사님은 설교 곳곳에서 "70주년을 맞이하는 우리 교회가 앞으로 어떤 교회로 서야 할지"를 함께 생각하자고 하셨습니다.
2. 한눈에 보는 설교의 흐름
| 순서 | 내용 |
|---|---|
| ① 관점 | 다윗 왕국은 다윗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 구약 교회의 모습이다. 그 모습에서 우리 교회가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할지를 본다. |
| ② 선입관 | 다윗 왕국이 훌륭했던 것은 다윗이 훌륭했기 때문이다? 맞지만 전부는 아니다. |
| ③ 용사들 | 아비새, 엘하난, 요셉밧세벳 — 군인으로서 다윗과 비슷하거나 더 뛰어난 사람들이 많았다. |
| ④ 신앙 | 아비새, 우리아 — 신앙에서도 다윗 못지않은 사람들이 곁에 많았다. |
| ⑤ 중간 결론 | 다윗 왕국은 다윗 혼자 세우지 않았다. 하나님이 믿음의 동역자를 많이 보내 주셨다. (후스와 루터의 차이) |
| ⑥ 베들레헴 우물물 | 세 용사가 목숨 걸고 길어 온 물을 다윗은 마시지 않고 하나님께 드렸다. 부하들의 헌신은 하나님을 향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
| ⑦ 교회 |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 그리스도의 몸이다. 나보다 뛰어난 사람을 보면 기쁘다. 부하는 소모품이 아니라 동역자요 친구다. |
| ⑧ 다음 세대 | 어른 세대는 후배들이 우리보다 더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못 한다"는 것은 겸손이 아니라 책임 유기다. |
| ⑨ 예수님의 기대 |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할 것이요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요 14:12-14). |
| ⑩ 친구 |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고 친구라 하였노니"(요 15:13-15). 왕·창조주·목자 → 아버지 → 친구. 모세와 아브라함. |
| ⑪ 친구가 되는 길 | 뽀로로와 아이들처럼, 함께 지내는 시간이 쌓여야 친구가 된다. 성경 읽기와 예배의 목적. |
| ⑫ 교회의 자랑 | 교회의 자랑은 지도자가 아니라 교인이다(살전 2:19-20). |
| ⑬ 결론 | 교회가 해야 할 가장 큰 일은 내가 변화되어 예수님의 친구로까지 장성하는 것이다. |
3. 결론 — 가장 큰 일은 내가 변화되어 예수님의 친구로 자라는 것
- 하나님 나라는 혼자 하지 않는다. 다윗도 혼자 하지 않았다. 다윗이 혼자 있었다면 이미 죽었다. 하나님 나라는 함께 세워져 간다.
- 함께 세워 가는 직분자들, 동역자들을 수하로 보지 않고 종으로 보지 않는다. 믿음 안에서 한 형제와 자매로, 한 가족으로, 정말 친구로 바라보며 교회를 이루어 갈 때, 주님께서 "이 교회는 진짜 나의 기쁨이고 나의 자랑이다"라고 말씀하신다.
- 우리는 때때로 이렇게 기대한다. "하나님, 우리 교회를 통해 많은 일을 하기를 원합니다. 튀르키예와 시리아와 우크라이나에, 우리 한국 사회의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많은 일을 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목사님도 그런 교회, 많은 일을 효과적으로 잘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한다고 하셨다.
- 그런데 주님께서 원하시는, 우리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 큰 일은 무엇인가? 내가 변화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가장 큰 일은 내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변화되고 하나님의 아들딸답게 성장하는 것이다.
- 어디까지 성장하기를 원하시는가? "너는 내 친구다. 정말로 친구다. 친구야, 우리가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함께 싸우고,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일하자." 예수님의 모든 관심은 여러분에게 있다.
- 그래서 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 "하나님, 저는 그냥 하시는 말씀에 순종만 하겠습니다. 그러니 시키기만 하세요." 그것은 평생 유치원에서 살겠다는 잘못된 생각이다. 선생님이 "앞으로 나란히" 하면 앞으로 나란히 하고 "뒤로 돌아" 하면 뒤로 도는 것을 아무리 완벽하게 잘해도, 아버지가 원하시는 것은 장성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어느 정도까지 장성하기를 원하시는가? 친구가 되기를 원하신다.
- 그러므로 예수님의 친구, 하나님의 친구, 예수님의 동역자가 되기 위해, 아이들이 뽀로로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고 늘 뽀로로를 생각하고 뽀로로와 함께 지내듯이, 예수님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고, 문제가 있을 때마다 골방 기도의 자리에 들어가 예수님의 도우심을 받고, 예수님께서 자기 이름으로 맹세하신 그 약속대로 나를 통해 일하시는 것을 경험하면서, 모세와 같이 하나님의 친구로, 예수님의 동역자로 든든하게 세워져 가는 서울중앙교회 한 분 한 분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하셨다.
4. 함께 드린 기도 제목
- 다윗과 같은 마음 — "하나님, 저의 마음속에 성령님이 충만했던 다윗과 같은 마음을 주십시오. 형제와 자매를 대할 때에 존중히 여기며 귀하게 여기며, 믿음의 동역자로 함께하는 그 경건한 마음을 주십시오."
- 예수님의 친구와 같은 교회 — "하나님, 저와 우리 교회에 은혜를 주십시오. 예수님의 자랑과 기쁨이 되는, 예수님의 친구와 같은 교회, 그런 교인으로 살아가는 은혜를 주십시오."
마무리 기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고 원하시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믿음 안에서 장성하여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예수님과 똑같이 되는 장성한 믿음의 사람으로, 예수님의 동역자와 친구로 자라는 것임을 믿는다는 고백. 하나님께서 가장 크게 생각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니, 그 소원을 가지고 주님을 가까이하며 예수님의 마음과 생각이 내 마음과 생각이 되도록 은혜를 구하는 기도. 이어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을 기억하게 하심에 감사하며, 주님과 함께 동역하는 교회로 자라고 쓰임 받기를, 그런 비전과 열심을 주시기를, 예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보실 때 기뻐하시고 우리가 주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사랑하며 주님의 교회를 세워 가는 동역자, 성숙한 믿음의 친구로 다 설 수 있기를, 예수님의 마음에 기쁨과 자랑이 되는 서울중앙교회로 세워져 가는 하루하루가 되기를 구하는 기도.
5. 성경 본문 (사무엘하 21:15-22, 23:13-17) 줄거리
본문은 개역개정 성경의 내용을 풀어서 요약한 것입니다. 정확한 문장은 성경을 직접 펴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아래쪽 두 줄(23:8, 23:39)은 본문 범위 밖이지만 설교에서 직접 언급하신 구절이라 함께 실었습니다.
| 구절 | 내용 |
|---|---|
| 21:15 | 블레셋 사람이 다시 이스라엘을 쳤다. 다윗이 부하들과 함께 내려가 싸우다가 피곤해졌다. |
| 21:16 | 거인족의 자손 가운데 무게 삼백 세겔 되는 놋 창을 들고 새 칼을 찬 이스비브놉이 다윗을 죽이려 했다. |
| 21:17 |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다윗을 도와 그 블레셋 사람을 쳐 죽였다. 그때 다윗의 부하들이 맹세하며 말했다. "왕은 다시는 우리와 함께 전장에 나가지 마십시오.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지 않게 하십시오." |
| 21:18 | 그 뒤 곱에서 블레셋과 다시 싸울 때 후사 사람 십브개가 거인족의 자손 삽을 쳐 죽였다. |
| 21:19 | 또 곱에서 싸울 때 베들레헴 사람 야레오르김의 아들 엘하난이 가드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다. 그의 창 자루는 베틀 채 같았다. |
| 21:20-21 | 또 가드에서 싸울 때 손가락과 발가락이 여섯 개씩, 모두 스물네 개인 키 큰 사람이 있었다. 그도 거인족의 소생이었다. 그가 이스라엘을 모욕하자 다윗의 형 삼마의 아들 요나단이 그를 죽였다. |
| 21:22 | 가드 거인족의 소생인 이 네 사람이 다윗의 손과 그의 부하들의 손에 다 넘어졌다. |
| 23:13-14 | 삼십 두목 가운데 세 사람이 곡식 벨 때에 아둘람 굴로 내려가 다윗에게 갔다. 블레셋의 한 무리가 르바임 골짜기에 진을 쳤고, 다윗은 산성에 있었으며, 블레셋의 요새(주둔군)는 베들레헴에 있었다. |
| 23:15 | 다윗이 간절히 원하며 말했다.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누가 내게 마시게 해 줄까." |
| 23:16 | 세 용사가 블레셋 진영을 뚫고 지나가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길어 다윗에게 가져왔다. 그러나 다윗은 마시기를 기뻐하지 않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렸다. |
| 23:17 | 다윗이 말했다. "여호와여, 내가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않겠습니다. 이것은 목숨을 걸고 갔던 사람들의 피가 아닙니까." 그는 마시려 하지 않았다. 세 용사가 이런 일을 했다. |
| (23:8) | 다윗의 용사들의 이름. 요셉밧세벳은 군지휘관의 두목이며, 단번에 팔백 명을 쳐 죽였다. |
| (23:39) | 용사 명단의 마지막 이름은 헷 사람 우리아다. |
6. 설교 내용 정리
6-1. 도입 — 다윗 왕국은 하나님 나라의 모습, 구약 교회의 모습이다
- 다윗 왕국은 다윗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어떠한지를 보여 준다. 다윗 왕국을 생각할 때 우리는 구약 시대에 있었던 하나님 나라의 모습, 구약 교회의 모습을 본다.
- 예수님은 다윗의 왕국을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시는 메시아로 오셨다. 그리고 교회를 세우셨다.
- 그래서 오늘 말씀을 볼 때, 구약 시대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운 모습, 구약 시대에 드러난 교회의 좋은 모습을 보면서 신약의 교회인 우리 교회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할지,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할지 자신을 돌아보자고 하셨다.
- 그리고 70주년을 감사하는 우리 교회가 앞으로 어떤 교회로 서야 할지 함께 생각하고 은혜받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하셨다.
6-2. 우리의 선입관 — "다윗이 훌륭했기 때문이다"
말씀을 볼 때 꼭 기억할 것이 있다. 우리에게는 선입관이 있다.
- 정말로 좋은 교회, 훌륭한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다윗 왕국은 어떤 점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잘 드러냈는가?
- 우리는 "다윗이 훌륭했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한다. 맞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 정말로 훌륭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은 어떻게 만들어져 가는가? 사무엘하 21장과 23장을 쭉 보면 다윗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갔던 용사들이 나온다. 그 용사들의 면면을 보면 은연중에 갖고 있던 선입관이 많이 깨진다.
목사님은 회중에게 물으셨다.
-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제일 잘해야 하는 분은 누구인가? 직분자들이다. 목사님들, 장로님들, 집사님들, 권사님들. 직분자가 제일 신앙생활을 잘해야 하고, 잘하기를 기대한다.
- 다윗 왕국에서는 누구의 신앙이 제일 좋아야 하는가? 물론 다윗이다. 그것은 당연히 기대하는 것이다.
- 그러면 다윗과 함께했던 사람들의 신앙은 다윗보다 못했겠는가? 우리는 은연중에 다윗이 최고였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성경에 나오는 다윗의 사람들을 보면 군인으로서의 특징과 신앙인으로서의 특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6-3. 군인으로서 — 다윗과 방불하거나 더 뛰어난 용사들
| 용사 | 목사님의 설명 |
|---|---|
| 아비새 | 오늘 기사에서 아비새가 다윗의 목숨을 구해 준다. 이때 아비새가 다윗을 구해 주지 않았다면 다윗 왕국은 없어졌을 것이다. |
| 엘하난 | 다윗은 골리앗과 싸워 이겼다. 그런데 엘하난은 골리앗의 동생과 붙어서 이겼다. |
| 요셉밧세벳 | 생소한 이름이지만 다윗의 용사들 가운데 최고 지휘관이다. 전쟁터에서 한 명이 두세 명을 상대하기도 어려운데 800명과 싸워 이겼다. |
- 이런 내용을 보면, 다윗도 훌륭한 용사이지만 다윗과 함께 있던 군인들 가운데는 다윗과 방불하게 훌륭했거나 다윗보다 더 뛰어난 군인들도 있었구나 하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 요셉밧세벳에 대해 목사님은 "용사 가운데 두목인 이 사람은 거의 삼손에 버금가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하셨다. 성령님께서 충만하여 삼손이 수백 명과 싸워 이겼다. 전투력으로 보면, 군인으로 보면 요셉밧세벳은 다윗보다 더 뛰어난 훌륭한 군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 그런데 이런 군인들이 다윗 곁에 한두 명이 아니라 참 많이 있었다.
6-4. 신앙인으로서 — 다윗 못지않은 믿음의 사람들
전투력이나 군인으로서는 다윗보다 뛰어났을 수 있어도 신앙의 면에서는 그래도 다윗이 최고가 아니었을까 하고 우리는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삼십 명의 용사 가운데 몇몇을 가만히 살펴보면 그 사람들의 신앙이 다윗보다 형편없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아비새의 믿음
- 아비새의 믿음에 대해 기록된 것을 우리는 안다. 양쪽에서 협공을 받았을 때 요압과 함께 간절히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나라와 백성들을 위해 목숨을 다해 싸우자"고 했다.
우리아의 믿음
- 삼십 명의 대장 가운데 제일 마지막에 언급된 사람이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다.
- 우리는 우리아의 믿음과 신앙을 어느 정도 추측하고 잘 알고 있다. 그는 이방인이었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거듭난 사람이다.
- 밧세바 사건 때 보여 준 우리아의 믿음을 보면 참 경건하고 진실하고 충성된 신앙인이었다. 많은 고민이 있었을 텐데, 그 와중에 군인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걸어가야 할 믿음의 길을 쭉 걸어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
다윗보다 신앙이 좋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다윗 못지않게 믿음과 신앙이 탁월한 군인들이 다윗 곁에 많이 있었다.
6-5. 중간 결론 — 다윗 혼자 세운 나라가 아니다
- 결론은 이것이다. 다윗 왕국이 든든하게 서게 되었을 때 다윗 혼자 세운 것이 아니다. 혼자 세웠다면 다윗은 죽어서 없어졌을 것이다.
- 다윗 왕국이 든든하게 세워진 결정적인 요소는,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동역할 수 있는 좋은 믿음의 사람들, 하나님 나라의 동역자들을 많이 보내 주셨기 때문이다.
교회사의 예 — 후스와 루터
-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할 때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성공했다.
- 그런데 루터가 나오기 한 100년 전쯤에 얀 후스(목사님 표현으로는 "존 후스")라는 사람이 종교개혁을 했다. 후스는 종교개혁을 하다가 붙잡혀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다. 도와주던 영주들이 배신하고, 협박 속에서 후스에 대한 보호를 철회했기 때문이다.
- 루터도 똑같은 상황에 처했다. 그러나 루터는 종교개혁에 성공했다. 루터 혼자 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 영주들, 선제후들이 "내 특권과 명예를 다 잃어버린다 할지라도, 루터가 전하는 복음의 말씀이 참 진리의 말씀이다. 내가 모든 것을 걸고 싸우겠다"고 했다. 그런 믿음의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종교개혁이 성공하고 교회가 새롭게 되었다.
6-6.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 (삼하 23:13-17)
다윗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기 부하들, 충성된 군인들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었는지 보여 주는 사건이 23장에 기록된 이 중요한 사건이다.
사건
- 베들레헴 근처에서 블레셋과 전쟁을 하고 있었다. 완전히 포위되어 있었던 것 같다.
- 다윗은 어릴 때 베들레헴에서 자랐으니 베들레헴 성문 곁에 있는 우물의 물을 좋아했던 것 같다. 지나가는 말로 했을 것이다. "누군가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에 있는 그 시원한 물을 갖다 주면 참 좋겠다. 그 물을 마시고 싶다."
- 충성된 용사 세 명이 그 이야기를 듣고 목숨을 걸고 포위망을 뚫고 가서 그 물을 길어 왔다. 그리고 다윗에게 가져와 "우리가 목숨을 걸고 포위망을 뚫고 가서 물을 구해 왔습니다. 목을 축이십시오" 하고 드렸다.
세상의 왕이라면
- 세상의 왕이라면 모든 부하를 소집해서 자랑했을 것이다. "이 세 명의 충성된 신하들을 봐라. 내가 물 먹고 싶다고 하니까 목숨을 아끼지 않고 포위망을 뚫고 가서 물을 구해 왔다."
- 모두가 주목하는 가운데 물을 마시면서, 왕의 권위와 왕을 위해 목숨을 바친 신하들의 용맹을 자랑하며 자기 왕권을 높이려고 충분히 그렇게 했을 것이다.
- 그 사건을 통해 부하들에게 왕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 경쟁을 시켰을 가능성도 있다.
다윗은 달랐다
- 이때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하나님 나라의 신실한 왕으로 믿음 생활을 잘할 때였다.
- 세 명의 부하가 목숨을 걸고 물을 가져와 드시라고 했을 때 다윗은 회개한다. 부하들이 가져다준 것은 물이 아니라 부하들의 생명을 가져다준 것과 똑같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 그래서 하나님께 이렇게 말한다(목사님이 다윗의 마음을 풀어 말씀하신 내용).
"하나님, 나의 부하들이 갖다 준 것은 물이 아닙니다. 자기의 목숨과 생명을 걸고 갖다 준 것입니다. 제가 이스라엘의 왕이지만, 부하들이 나에게 보여 준 이 충성과 사랑과 이 생명은 얼핏 보기에는 나를 위해 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들이 나를 위해 목숨을 다 바친 것은, 이들이 하나님 나라의 충성된 용사들이고 이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충성과 헌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 다윗이 사랑스러워서 이렇게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일하고 있는 나의 목마름을 불쌍히 여겨서 이 일을 했는데, 이들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을 향한 충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헌신이 있습니다. 그 마음이 목숨을 걸고 물을 가져오게 한 것을 압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이 물은 내가 목을 축이기 위해 마실 물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려야 할 물이라는 것을 제가 압니다."
이것이 성령님이 충만한 다윗이 깨달은 것이다.
알기 쉬운 비유 — "오늘 설교는 저를 위한 설교였습니다"
- 예배 가운데 설교를 듣고 엄청나게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이 설교자에게 와서 말한다. "목사님, 오늘 설교는 처음부터 끝까지 저를 위한 설교였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은혜를 엄청나게 받았습니다."
- 그 말을 들을 때, 그 사람에게 은혜를 주신 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우리는 다 안다.
-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똑같은 예배와 설교를 들어도 사람마다 받는 은혜가 다르다. 사람이 주는 은혜라면 똑같이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령님께서 사모하는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 다윗도 세 용사를 보았을 때,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헌신과 희생이 하나님을 향한 마음인 것을 깨닫고 "이것은 내가 마시면 안 되고 하나님께 드리자"고 했다. 그것이 다윗이 부하들에게 보여 준 모습이다.
6-7. 성령 충만한 사람은 부하를 소모품으로 보지 않는다
- 성령님께서 충만한 사람은 그 마음에 성령님이 계신다. 하나님을 정말로 잘 믿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계신다.
- 그러므로 "내가 뛰어나다, 내 부하들은 내 소모품이다, 내 부하들은 내 노예이고 종이다"라는 생각이 없다.
- 그것이 교회를 섬기는 모든 직분자에게,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다.
나보다 뛰어난 사람을 볼 때
목사님은 물으셨다. 교회 생활, 신앙생활을 할 때 내 주위에, 혹시 나와 경쟁하는 사람들 가운데 나보다 더 뛰어난 은사와 믿음과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을 볼 때 어떤 마음이 드는가?
- 성령님이 충만한 사람, 정말로 믿음 안에 살아가는 사람은 그런 사람을 볼 때 정말로 기쁘다.
-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이고,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다. 성령님이 충만하고 교회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손이 발더러 "너 같은 것은 필요 없다"고 하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몸에 붙어 있는 사람이 아니다.
가족의 비유
- 누가 아버지에게 찾아와 "당신 아들이 아버지인 당신보다 백 배나 낫습니다" 하고, 어머니에게 찾아와 "당신 딸이 당신보다 백 배나 아름답고 더 훌륭합니다"라고 했을 때, 그 말을 듣고 분개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없다. 만약 있다면 그것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닐 것이다.
- 자녀가 나보다 더 뛰어나고 훌륭하다는 말을 들을 때 기뻐하는 것은 가족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이다.
나보다 못한 사람을 볼 때
- 나보다 못한 사람, 결핍이 있는 사람, 어려운 가운데 있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을 보면서 "너는 저 구석에 앉든지 땅바닥에 앉든지 좋을 대로 해라" 하는 것은 교인이 아니다.
- 하나님의 교회는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이 있을 때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는 곳이다.
다윗의 마음
다윗은 자기 부하들을 소모품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귀한 동역자로 생각한다. 목사님은 다윗의 마음을 이렇게 풀어 말씀하셨다.
"내가 비록 왕이지만, 내가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은 나의 동역자인 아비새가 나를 구해 줬기 때문입니다. 내가 왕으로 전쟁을 하지만 수많은 전쟁에서 실제로 피를 흘리며 싸운 사람들은 당신들입니다. 당신들이야말로 하나님 나라의 동역자요,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요, 우리가 함께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 싸우는 믿음 안에서의 친구들입니다."
교회는 그와 같다. 우리는 서로를 볼 때, 비록 혈연으로 피를 나눈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의 한 백성이 되었고 그리스도의 한 지체가 되었다.
6-8. 다음 세대를 향한 진심 — "우리보다 더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 부모님들은 수고하여 얻은 모든 재산과 지혜와 능력을 자녀가 잘되도록 온 힘을 다해 기울인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다.
- 믿음으로 신앙생활 하신 어르신들이 후배들을 보면서, 우리 시대와 비교할 수 없는 세상의 엄청난 도전에 직면한 아들딸과 젊은 세대를 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 부탁합니다. 우리보다 더 훌륭한 믿음의 사람으로 서 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쓰신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여러분을 써 주시기를 바랍니다."
- 목사님은 물으셨다. "그 마음이 그냥 립서비스로 있습니까, 진심으로 있습니까? 진심으로 있습니다."
- 어르신들이 젊은 세대를 볼 때, 목사님이 다음 세대를 볼 때, 후배 교역자들을 볼 때, 목사님보다 정말로 훌륭한 교역자가 되기를 바란다고 하셨다. "여러분은 우리가 갖고 있는 모습보다 더 믿음의 사람들로 살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 그 진심이 없다면 그것은 거짓일 것이고, 그것은 교회가 아닐 것이다. 그 진심을 믿지 않는다면 참 불행한 것이다.
"저희가 어떻게 목사님만큼…" — 겸손이 아니라 책임 유기
"목사님, 아무리 그렇게 해도 저희가 목사님만큼 훌륭한 목사가 되겠습니까?" 목사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그것은 겸손이 아니라 책임을 유기하는 것이다. 절대로 겸손한 것이 아니다.
6-9. 예수님의 기대 —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요 14:12-14)
회중과 함께 요한복음 14:12-14을 한 절씩 교독하고 14절은 함께 읽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12절)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14절)
(13절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을 예수님이 행하셔서 아버지께서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겠다는 말씀이다.)
-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 동안 많은 일을 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너희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내가 한 것은 못 한다. 그러니 적당한 선에서 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 제자들이 오해할까 봐 "내가 진실로 진실로", 곧 "내가 진심으로, 정말로 너희에게 말하는데"라고 하셨다.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만큼 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다."
- 목사님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렇게 풀어 주셨다. "나는 너희가 내가 했던 일을 넉넉하게 하기를 원하고, 사실은 내가 했던 일보다 더 많은 일을 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내가 아버지께로 간다. 그래서 나와 방불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을 너희에게 마음껏 부어 줄 것이다. 성령님께서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내가 한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내 이름을 걸고 맹세하는데,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나에게 구하면 내가 그대로 행할 것이다."
- 예수님이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은 "너희는 피조물이고 아무리 해 봤자 못 하니까 적당하게 살아라"가 아니다. "나보다 더 많은 일을 하기를 원한다. 능력이 부족하고 힘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래서 내가 아버지께로 간다. 아버지께로 가서 성령님을 부어 주겠다. 내가 공생애 하는 동안 나와 함께하셨던 그 성령님을 너희에게 넘치도록 부어 주어서, 너희가 해야 할 모든 일을 나보다 더 많이 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쓰기를 원한다. 내 이름을 걸고 맹세한다."
- 예수님은 이 말씀을 마지막에 제자들에게, 교회에 하시고 가셨다.
6-10.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요 15:13-15) — 하나님과 나의 관계
회중과 함께 요한복음 15장을 한 절씩 교독했다(목사님은 "13절과 15절"이라고 하셨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3절)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15절)
목사님은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하면서, 성경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하도 여러 가지로 말해서 혼동되고 헷갈릴 때가 있었다고 하셨다. 지금도 명쾌하게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지금 이해하고 있는 것을 설명해 보겠다고 하셨다.
첫째 단계 — 왕, 주님, 창조주, 목자
- 하나님은 우리의 왕, 나의 주님, 나의 창조주, 나의 목자이시다. 이런 관계에서 나의 자리는 편하다.
- 하나님이 왕이시니 나는 신하요 백성이다. 창조주이시니 나는 순종하는 피조물이다. 목자이시니 나는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면 된다.
-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앞으로 나란히" 하면 앞으로 나란히 하고, "뒤로 돌아" 하면 돌고, "밥 먹어" 하면 밥 먹으면 되는 것과 같다. "역시 믿음 생활은 무조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되는구나." 그렇게 신앙생활을 했다.
둘째 단계 — 아버지
- 그러다가 헷갈리는 일이 생겼다. 하나님께서 "나는 아버지다.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한다. 아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응답해 준다"고 하시는 말씀을 들은 것이다.
- 무조건 순종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때때로 아버지께 무언가를 부탁해야 하고, 아들이 철이 들면 아버지의 마음을 닮아 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것이 은혜이기도 했고 또 다른 성장의 계기도 되었다.
- "예수님, 저는 평생 양으로 살래요. 그냥 말씀만 하세요. 충성하겠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아니다. 너는 나의 노예가 아니다. 종이 아니다. 너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다. 아들이 원하는 것은 아버지가 들어준다"고 하셨다. 그러자 신앙생활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달라졌다.
셋째 단계 — 친구
- 그런데 오늘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은 "너는 내 친구야"이다. 목사님은 "이게 이제 골치 아프게 된 것"이라고 하셨다.
- "여러분, 정말로 친한 친구 있으시죠?" 그 친구를 만나서 "친구여, 말씀하시옵소서. 나는 무조건 듣겠나이다" 한다면 그것은 친구가 아니다. 아버지께 순종하듯 친구에게 순종하는 것도 친구가 아니다.
- 친구라는 관계는 신기한 관계인데, 대등하다. 친구는 나를 대등하게 대해 주는 것이다.
- 예수님께서 유월절 만찬을 마치시고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제자들에게 많은 말씀을 하시면서 관계 정립을 딱 하신다. "너희는 내 친구다. 나는 너희가 내 친구가 되기를 원한다. 너희는 소모품이 아니다. 종이 아니다. 아들이 아니다. 그보다 더 풍성한 친구다. 우리가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고,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싸우고,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동역하는 친구로 사귀기를 원한다."
- 그 마음으로 성경을 다시 보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관계는 "내가 왕이니까 내 말을 들어라"도 아니고 "아버지의 말이니까 들어라"도 아니다. 그 모든 관계가 다 있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제일 큰 은혜는 "나는 너를 친구로 삼고 싶다"는 것이다.
구약의 친구들 — 모세와 아브라함
| 인물 | 목사님의 설명 |
|---|---|
| 모세 | 하나님은 모세를 친구처럼 대하셨고, 모세도 그 은혜의 관계 속에서 지냈다. 사람이 친구와 이야기하듯이.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겠다고 하실 때, 종이라면 "예스" 했을 텐데 모세는 친구에게 하듯 말한다. "하나님, 이렇게 하시면 조금 하나님답지 않지 않습니까? 이건 이렇게 좀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
| 아브라함 |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친구처럼 대하신다. "내가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할 중요한 일이 있는데 친구 아브라함에게는 가르쳐 줘야지." 그때 아브라함은 "창조주이신 주님,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지 않고 "심판하실 때는 정의롭게 하셔야 하는데, 긍휼이 많으시다면 의인 열 명이 있어도 살려 주셔야 하지 않습니까?"라고 했다. |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하나님의 친구처럼, 예수님의 친구처럼 자라기를 정말로 원하신다.
6-11. 어떻게 예수님의 친구가 되는가 — 뽀로로와 아이들
- 유치원 나이 어린아이의 제일 친한 친구는 누구인가? 목사님이 알기로는 뽀로로다. 뽀로로가 등장하면 아이들이 울다가도 그치고 모든 일이 해결된다. "뽀로로가 아이를 돌보는 데는 성령님보다 더 능력이 있다"는 농담도 들은 적이 있다고 하셨다.
- 아이들이 뽀로로와 어떻게 친한가? 아침에 일어날 때 뽀로로와 함께 일어난다. 하루를 지낼 때 뽀로로와 함께 지낸다. 잠잘 때도 뽀로로와 함께 잔다. 그러니까 친구가 되는 것이다.
- 예수님의 친구는 어떻게 되는가? 친구가 되기로 결심하지만, 정말로 친구가 되려면 우리가 친구를 사귀었던 것처럼 해야 한다. 친구와 여러 추억을 만들고, 함께 여행도 하고, 함께 봉사도 가고, 함께 공부도 하고,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어느 순간 친구의 생각이 내 생각이 된다.
목사님의 경험
- 목사님은 요즘도 목회를 하거나 교회를 섬기다가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교수님들과 친구들에게 전화한다. 그런데 전화하기 전에 예상을 한다. "이 질문을 하면 이 친구는 이렇게 답할 거야. 교수님은 분명히 이런 식으로 답하실 거야." 거의 맞을 때도 있고, 또 좋은 도움을 받을 때도 있다.
- 예수님과 친구가 된다는 것은, 내가 처한 상황 속에서 기도 제목과 소원이 있을 때 기도의 자리에 들어가 "예수님이시면 이렇게 하실 거야. 정말 이렇게 하실까?" 하며 기도하다 보면 예수님께서 친구로서 우리에게 딱 다가오시는 것이다.
- 우리는 항상 피조물이고 종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은혜와 복은 우리가 친구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 지낸 시간, 함께 생각한 시간, 함께 보낸 일들이 쌓여 갈 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예수님과 정말 친한 친구가 된다.
그 관점으로 다시 보는 신앙생활
- 그 관점으로 지금까지 교회에서 배우고 강조했던 것들을 다시 돌아보라고 하셨다.
- 왜 성경을 읽는가? 예수님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싶어서다. 성경 지식을 늘리려고, 많이 읽었다고 상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 부산물이다.
- 성경을 읽고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알고 싶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싶은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과 사랑을 알다 보니 그 사랑에 감격하여 예수님을 좋아하게 된다. 예수님을 점점 좋아하다 보니 예수님께서 나를 더 가까이하시는데, 예수님은 내가 친구가 되기를 원하신다.
- "예수님, 저는 괜찮습니다. 저는 그냥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면서 살겠습니다." 그것은 겸손한 것처럼 보이지만 오해한 것이다.
6-12. 교회의 자랑은 교인이다 (살전 2:19-20)
회중과 함께 데살로니가전서 2:19-20을 읽었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살전 2:19-20)
- 70주년을 맞이하는 서울중앙교회의 자랑이 무엇인가? 70주년을 지나며 돌아볼 때 우리 교회가 자랑하고 기뻐할 면류관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이렇게 답할 수 있다. "우리 교회에서 루터와 같은 훌륭한 목회자가 나왔습니다. 훌륭한 정치가들이 나왔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 데살로니가 교회의 기쁨과 자랑은 누구인가? 사도 바울이 개척했으니 "사도 바울이 우리 교회의 개척자인 것"이 자랑인가? 바울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 교회의 자랑은 교인이다. 서울중앙교회의 자랑은 여러분이다.
- 예수님은 주님의 교회의 자랑을 생각하실 때 지도자가 누구인지를 자랑하지 않으신다. 우리 교회의 주인, 머리는 예수님이시다. 그런데 예수님은 예수님 자신이 교회의 자랑이라고 하지 않으신다.
- 예수님은 우리 교회를 향해 말씀하신다. "나의 자랑이 무엇인지 아느냐? 너희다.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려고 애쓰는, 믿음이 장성하여 하나님 나라의 신실한 군사로 살아가려고 애쓰는, 그리고 결국은 나의 친구가 되어 있는 너희가 나의 자랑이고 서울중앙교회의 기쁨이다."
(이어지는 설교의 맺음말은 3장 '결론'에 정리했다.)
7. 참고자료
설교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덧붙인 배경 설명입니다. 설교에서 직접 말씀하신 내용이 아닌 부분은 성경 본문과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성경·교회사 자료에 근거했습니다. 연대는 "약"으로 표기했습니다.
7-1. 역사 배경
사무엘하 21-24장의 성격
사무엘하의 마지막 네 장(21-24장)은 앞의 이야기에 시간 순서대로 이어지는 부분이 아니라, 다윗 시대의 여러 사건과 시, 용사들의 명단을 모아 놓은 부록 같은 부분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본문의 전투들이 정확히 다윗 생애의 어느 때 일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윗의 통치 시기는 주전 약 1010~970년이다.
설교에서 언급된 성경 사건의 장절
| 설교의 언급 | 성경 |
|---|---|
| 아비새가 다윗의 목숨을 구함 | 삼하 21:15-17. 지친 다윗을 거인족 이스비브놉이 죽이려 할 때 아비새가 도왔다. |
| 엘하난이 골리앗의 동생을 이김 | 삼하 21:19, 대상 20:5.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일은 삼상 17장. |
| 요셉밧세벳이 800명을 이김 | 삼하 23:8. 같은 인물이 역대상 11:11에는 '야소브암'이라는 이름으로, 숫자는 삼백 명으로 나온다. |
| 삼손이 많은 사람을 이김 | 삿 15:14-15. 여호와의 영이 임하여 나귀 턱뼈로 블레셋 사람 천 명을 쳤다. |
| 협공을 받았을 때의 믿음 | 삼하 10:9-12. 암몬과 아람 군대가 앞뒤로 진을 쳤을 때의 일. 성경 본문에서 이 말은 형 요압이 아우 아비새에게 한 말이다. "너는 담대하라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담대히 하자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 |
| 우리아의 충성 | 삼하 11:6-13. 다윗이 집에 가서 쉬라고 했으나 우리아는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야영 중에 있고 내 주 요압과 부하들이 들에 진 치고 있는데 내가 어찌 집에 가겠느냐"며 가지 않았다. |
| 모세와 친구처럼 말씀하심 | 출 33:11.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가 하나님께 뜻을 돌이켜 달라고 구한 일은 출 32:9-14, 민 14:11-20. |
| 아브라함과 소돔 | 창 18:17-33.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아브라함은 의인 50명에서 시작해 10명까지 여섯 번 간구했다.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벗'이라 부른 곳은 대하 20:7, 사 41:8, 약 2:23. |
| 손이 발더러 필요 없다 하지 못함 | 고전 12:14-27. 본문 표현은 "눈이 손더러…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21절). |
| "저 구석에, 땅바닥에 앉으라" | 약 2:1-4. 가난한 사람에게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는 차별을 꾸짖는 말씀. |
후스와 루터
- 얀 후스(약 1372~1415): 보헤미아(오늘날 체코)의 사제이자 프라하 대학 교수. 영어식 이름이 '존 후스'다. 성경의 권위를 앞세워 교회의 부패를 비판했다. 1414년 콘스탄츠 공의회에 불려 갈 때 황제 지기스문트가 신변 안전을 보장했으나, 도착한 뒤 체포되었고 그 보장은 지켜지지 않았다. 1415년 화형을 당했다.
- 마르틴 루터(1483~1546): 1517년 '95개조 반박문'으로 종교개혁의 문을 열었다. 후스의 죽음으로부터 약 100년 뒤다. 1521년 보름스 제국 의회에서 주장을 철회하라는 요구를 거부해 법의 보호를 박탈당했으나, 작센의 선제후 프리드리히가 그를 바르트부르크 성에 숨겨 보호했다. 이후에도 여러 제후가 루터의 가르침 편에 섰고, 1530년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에는 제후들이 직접 서명했다.
- 설교에서 "도와주던 영주들이 보호를 철회했다"고 하신 것은 후스가 받았던 안전 보장이 지켜지지 않은 일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설교 당시의 일
2023년 2월 6일 튀르키예 남동부와 시리아 북부에 큰 지진이 일어나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2022년 2월부터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설교에서 "튀르키예와 시리아와 우크라이나"를 언급하신 배경이다.
7-2. 지리
| 지명 | 설명 |
|---|---|
| 베들레헴 | 예루살렘 남쪽 약 8~9km에 있는 유다의 성읍. 다윗의 고향이며(삼상 16:1), 훗날 예수님이 나신 곳이다. |
| 아둘람 굴 | 베들레헴 서남쪽 구릉 지대(세펠라)에 있는 굴. 다윗이 사울을 피해 숨었던 곳이기도 하다(삼상 22:1). 베들레헴까지는 대략 20km 안팎으로, 세 용사는 그 길을 적진을 뚫고 오갔다. |
| 르바임 골짜기 | 예루살렘 서남쪽의 골짜기. 블레셋이 유다 산지로 올라올 때 자주 진을 친 곳이다(삼하 5:18). |
| 가드 | 블레셋의 다섯 주요 성읍 가운데 하나. 골리앗의 고향이며 본문의 거인족이 이곳 출신이다. |
| 곱 | 블레셋과 전투가 벌어진 곳.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다. 역대상 20:4에는 '게셀'로 나온다. |
| 데살로니가 | 오늘날 그리스 북부의 테살로니키.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 교회를 세웠으나 박해로 급히 떠나야 했다(행 17:1-10). |
7-3. 인물
| 인물 | 설명 |
|---|---|
| 아비새 | 다윗의 누이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동생. 다윗의 조카다. 사울의 진영에 다윗과 함께 숨어 들어갔던 사람이며(삼상 26:6-9), 삼백 명을 창으로 쳐 죽인 용사로 기록되었다(삼하 23:18-19). |
| 요압 | 스루야의 아들, 다윗 군대의 총사령관. |
| 엘하난 | 베들레헴 사람. 개역개정 사무엘하 21:19과 역대상 20:5은 그가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다고 기록한다. |
| 요셉밧세벳 | 다윗의 '세 용사' 가운데 첫째. 군지휘관의 두목. 에센 사람 아디노라고도 불렸다(삼하 23:8). |
| 세 용사 | 삼하 23:8-12에 요셉밧세벳, 엘르아살, 삼마 세 사람이 나온다. 우물물을 길어 온 세 사람이 이들인지, 삼십 용사 가운데 다른 세 사람인지는 해석이 갈린다. |
| 삼십 용사 | 다윗의 정예 용사 집단. 사무엘하 23:24-39에 명단이 있고 "모두 삼십칠 명"이라고 맺는다. |
| 우리아 | 헷 사람, 곧 이스라엘 혈통이 아닌 이방인 출신. 밧세바의 남편. 다윗은 밧세바와의 죄를 덮으려고 그를 전쟁터 맨 앞에 세워 죽게 했다(삼하 11장). 용사 명단의 맨 끝에 그의 이름이 놓여 있다. |
| 거인족 | 히브리어 '라파'의 자손. 블레셋 땅 가드에 살던 몸집이 큰 사람들로, 골리앗도 가드 사람이다. |
| 모세 |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낸 지도자. |
| 아브라함 | 믿음의 조상. 성경이 '하나님의 벗'이라 부른 사람. |
| 바울 | 이방인의 사도. 데살로니가 교회를 세우고 두 통의 편지를 보냈다. |
| 뽀로로 | 한국의 어린이 애니메이션 「뽀롱뽀롱 뽀로로」의 주인공인 꼬마 펭귄. 어린아이들에게 인기가 대단해 '뽀통령'이라는 별명이 있다. |
7-4. 문화
물을 부어 드리는 것(전제)
다윗이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렸다"는 것은 물을 땅에 쏟아 버렸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 예물로 바쳤다는 뜻이다. 구약의 제사에는 포도주 등을 부어 드리는 '전제(奠祭)'가 있었다(민 15:5-10). 또 율법은 피를 먹지 말고 땅에 쏟으라고 했다(레 17:10-13, 신 12:23-24). 생명이 피에 있고 생명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다윗이 "이것은 목숨을 걸고 갔던 사람들의 피"라고 하며 마시지 않은 것은 이 배경에서 이해된다.
"이스라엘의 등불"
부하들이 다윗에게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지 않게 하소서"(삼하 21:17)라고 했다. 등불이 꺼진다는 것은 한 집안의 대가 끊긴다는 뜻으로 쓰이던 표현이다. 부하들은 왕의 생명을 나라 전체의 생명으로 여겼다.
친구와 종
예수님 시대에 종은 주인의 뜻을 설명 듣지 못하고 시키는 일만 했다. 반면 '왕의 친구'는 왕의 속마음과 계획을 듣는 가까운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다. 요한복음 15:15에서 예수님이 친구의 표로 드신 것도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알게 하였다"는 점이다.
면류관
데살로니가전서의 '면류관'은 왕관이 아니라 경기에서 이긴 사람에게 씌워 주던 화관(헬라어 '스테파노스')이다. 바울은 주님 앞에 설 때 자랑할 승리의 화관이 바로 성도들이라고 말한다.
7-5. 신학 용어
| 용어 | 풀이 |
|---|---|
| 하나님 나라 | 하나님이 왕으로 다스리시는 것. 구약에서는 다윗 왕국이 그 그림자였고, 예수님이 오셔서 그 나라를 시작하셨으며 다시 오실 때 완성된다. |
| 메시아 |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히브리어. 헬라어로 '그리스도'. 하나님은 다윗의 자손 가운데 영원한 왕을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고(삼하 7:12-16), 예수님이 그 약속의 왕이시다. |
| 동역자(同役者) | 같은 일을 함께 하는 사람. 바울은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고전 3:9)이라고 했다. |
| 지체(肢體) | 몸의 각 부분.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성도는 그 지체다(고전 12:27). |
| 직분자 | 교회에서 직무를 맡은 사람. 목사, 장로, 집사, 권사 등. |
| 교역자 | 목사, 전도사 등 교회 사역을 직업으로 맡은 사람. |
| 성령 충만 | 성령님의 다스림을 온전히 받는 상태(엡 5:18). |
| 보혈(寶血) |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귀한 피. |
| 공생애(公生涯) |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뒤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공적으로 사역하신 약 3년의 기간. |
| "그보다 큰 일" | 요 14:12.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가신 뒤 성령을 보내셔서 제자들을 통해 하실 일을 가리킨다. 흔히 복음이 온 세상으로 퍼져 나간 일로 설명한다. |
| 유월절 만찬 |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나누신 마지막 식사. 요한복음 13-17장의 긴 말씀이 이때 주어졌다. |
| 승천(昇天) |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늘로 오르신 일(행 1:9). |
| 강림(降臨) |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것, 곧 재림. |
| 장성(長成) | 자라서 어른이 됨.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엡 4:13). |
| 하나님의 형상 |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고(창 1:27), 구원은 죄로 일그러진 그 형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하는 것이다(골 3:10). |
| 긍휼(矜恤) | 불쌍히 여기는 마음. |
| 골방 |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기도하라"(마 6:6). 홀로 하나님 앞에 서는 기도의 자리. |
| 교독(交讀) | 인도자와 회중이 성경을 한 절씩 번갈아 읽는 것. |
8. 정리하며 확인할 점
- 영상 자동 자막의 인식 오류로 일부 표현과 고유명사, 교독 부분은 성경 본문과 문맥에 맞추어 바로잡았습니다. 설교자의 표현과 미세하게 다를 수 있습니다.
- 자막에 "마틴 루트가… 성공 못했습니다"로 적힌 부분은 바로 뒤에 "루터는 종교개혁에 성공했습니다"라고 하시므로 "성공했다"로 바로잡았습니다. "혼자 세웠다면 다윗은 이사하면서 죽어서"로 적힌 부분은 뜻이 분명하지 않아 "죽어서 없어졌을 것"으로만 옮겼습니다.
- 요셉밧세벳을 소개하실 때 자막에 "요한 말고 요셉 밧세벳"으로 적힌 부분은 문맥상 "요압 말고"로 보이지만 확실하지 않아 노트에는 옮기지 않았습니다. 후배 교역자에 대한 바람을 말씀하신 문장도 자막이 "정말로 목사와 같은 그런 교역자"로 흐려져 있어 뜻이 분명한 부분만 적었습니다.
- 요한복음 15장 교독에서 목사님은 "13절과 15절"이라고 하셨는데, 자막에는 두 절 사이에 뜻을 알 수 없는 짧은 구절("가칠 것이다")이 있어 14절도 함께 읽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1장 표에는 15:13-15로 적었습니다.
- 설교에서 "아비새의 믿음"의 예로 드신 협공 장면(삼하 10:9-12)은 아비새와 요압 형제가 함께 싸운 전투이며, 성경 본문에서 그 말은 요압이 아비새에게 한 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삼손이 싸워 이긴 사람의 수는 성경에 천 명으로 나옵니다(삿 15:15). 6장에는 말씀하신 그대로 적었습니다.
- 베들레헴 우물물 사건에서 설교는 다윗 일행이 "포위되어 있었던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성경 본문은 다윗이 아둘람 굴(산성)에 있었고 블레셋의 요새가 베들레헴에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드린 긴 고백은 본문 17절의 짧은 말을 목사님이 풀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 엘하난이 죽인 사람에 대해 개역개정은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로 옮기지만, 사무엘하 21:19의 히브리어 본문과 역대상 20:5의 관계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설명이 여러 가지입니다.
- 2~4장과 6장(설교 흐름·결론·기도 제목·설교 내용 정리)은 설교에서 실제로 말씀하신 내용만 담았고, 7장 '참고자료'는 이해를 돕기 위해 덧붙인 배경 설명입니다.
- 참고자료의 연대, 지명의 위치와 거리, 세 용사가 누구인지 등은 학자에 따라 견해가 조금씩 다릅니다.